[주간한국 2004.07.02] 수줍은 듯한 미소가 근사했고 술과 친구를 좋아했던 요절 포크가수 김광석. 그는 사실 스타가 될만한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TV 등 주류무대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았지만 발표하는 앨범마다 소리 없이 20~30만장이 팔려나간 언더그라운드 인기 가수였다. ‘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한 때는 방송 금지 되었던 그의 노래 ‘ 이등병의 편지’는 1980년대 이후에 군대에 다녀온 젊은 청춘은 한번쯤은 노래했던 그의 대표곡이다. 그는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기성 가요계에 진출하여 성공한 첫 가수이다. 김광석은 대구 대봉동에서 자유당정권시절 교원노조사태로 교단을 떠났던 전직교사 아버지의 3남 2녀 중 막내로 1964년 1월 22일에 태어났다. 5살때인 68년에 서울로 올라와 창신 초등학교를 다녔다. 왜소한 체격이라 ‘반토막’, ‘파김치’란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지만 IQ 130의 영특한 아이였다. 76년 경희중에 입학해 현악반에 들어간 그는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악보를 읽게 되었다. 79년 대광고에 입학해합창단원이 되었다. 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들어가면서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친구에게서선물 받은 민중 가요집 ‘젊은 예수’에 수록된 ''못생긴 얼굴''이란 노래를부르다가 울었다. “ 당시 우연히 접한 한돌, 김민기씨등의 노래를 듣고감동을 받고 노래 서클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래서 3학년이 된 84년 서울지역대학생의 노래연합서클인 ‘ 연합메아리’의 멤버가 되어 김민기의 ‘ 개똥이’ 음반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김민기의 주도로 대학가 노래 운동의 주역들이 규합하여 만든 ‘ 노래를 찾는사람들(노찾사)’의 창단 멤버가 되어 1집 앨범에 참여했다. 민중 가수가된 것이다. 이후 85년 1월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중 큰 형이 사망해 6개월 복무를 하고 제대를 했다. 복학을 한 그는 노래 인생을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