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조용필인 게시물 표시

조용필 Best 33

이미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결성되어 5년 가량을 부산 등지에서 활동해오던 그룹 '조용필과 그림자'는 1979년 대마초 연예인 활동 규제 철폐와 더불어 밴드 이름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개칭하고 새로운 시대를 기약한다. 이후 1980년 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조용필은 그 해 9월, 통상적으로 위대한 탄생 제1기로 알려져 있는 곽경욱(리드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키보드), 이건태(드럼) 라인업을 출범시킨다. 이 위대한 탄생 1기 멤버들은 조용필의 초기 명반으로 손꼽히는 3집과 4집 앨범의 음악들을 함께 하게 된다. 또한 객원멤버이기는 했지만 이호준이 공연마다 함께하면서 더욱 풍성한 음악을 선사하였다. 1983년 4월, 일본 NHK홀 라이브 공연을 앞두고 위대한 탄생을 프로젝트 그룹형식의 백밴드로 재편하면서 송홍섭(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변성룡(키보드), 김석규(기타),백천남(드럼), 유상윤(색소폰)등을 맞이하였다. 이들 2기 위대한 탄생의 연주는 외국공연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01. 킬리만자로의 표범 - 조용필                        12. 기다리는 아픔 - 조용필                               23. 비련 - 조용필 02. 그대 발길이 머무는곳에 - 조용필             ...

[추억의 LP 여행] 조용필

이미지
통기타 두 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슈퍼 스타 조용필은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가수다. 록, 트로트, 포크, 발라드, 댄스, 퓨전, 동요, 민요 등 35년 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은 거인이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는 '20세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의 넉넉한 농가에서 부친 조경구씨와 모친 김남숙씨의 3남 4녀 중 여섯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둥글둥글 성격이 좋아 '풀빵'으로 불렸다. 송산초등학교에 다니던 10살 때 뒤늦게 찾아온 홍역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을 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외국 팝송이 좋았던 그는 연주 그룹 벤쳐스와 비틀스 음악에 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2 때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해 경동중학에 들어갔다. 훗날 국민 배우가 된 안성기는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경동고에 진학하면서 공부보다는 더욱 음악에 빠져 었다. 3학년 때는 서소문의 대한일보 1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대타로 무대에 설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출을 했다. 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길 바랬던 부모님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 3명과 동대문 근처에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월세 방을 얻어 그룹 '애트킨스'를 결성했다. 석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문산의 용주골로 갔다. 이 시절의 1년은 흑인 병사와 양공주들이 던져주는 팁으로 생활하는 가혹한 시절이었다. 팀 해체 후 1969년 와해 직전의 화양 소속 그룹 '화이브 휭거스'에 리드 기타로 들어가 파주군 장파리의 DMZ클럽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주 레퍼토리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히트곡들. 하숙방과 업소에서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들은 노래의 선율을 도화지에다 건반을 그려가며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