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기사입력 2004-12-17 10:18 1960년대 극장 쇼의 슈퍼 스타 정원. 그는 방송이 아닌 라이브 무대와 음반만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린 특이한 가수였다. 지금도 올드 팬들의 애청곡인 대표곡 ‘허무한 마음’, ‘미워하지 않으리’, ‘내 청춘’ 등을 비롯해 그가 남긴 600여곡 중 방송 차트에 올랐던 곡은 한 곡도 없다. 이름보다는 노래로 더 알려진 그는 원조 언더 그라운드 가수로 불릴만 하다. 방송 개국 러쉬가 이뤄졌던 60년대는 여전히 극장쇼 무대의 비중이 방송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녔었다. 패티김, 이미자, 박재란, 최숙자, 최희준, 김상희는 말이 필요 없는 60년대 최고 스타였지만, 극장쇼 무대의 스타는 그들 외에도 정원, 쟈니리, 이금희가 공존했다. 주류 방송 가수가 아닌 정원이 60년대 각종 신문, 잡지와 전국의 방송국에서 50여개의 가요상을 휩쓴 최고 가수로 군림했던 것은 그 같은 시스템때문. 세월과 함께 이름은 잊혀졌지만 정원의 음반들은 마니아들에겐 여전히 수집 아이템으로 꼽히는 것도 그 덕택이다. 정원의 본명은 황정원. 일본 유학을 다녀와 외자청(현 조달청) 공무원을 지낸 부친 황종호씨와 원산의 명문 루시고녀 출신인 모친 최복녀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1941년 2월 23일에 금강산 마을로 유명한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 장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말을 타고 사냥과 음악을 즐겼던 호탕한 분이셨고 모친은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축음기로 일본 노래들을 많이 들었다. 쾌할한 성격의 그는 전쟁 놀이를 좋아했다. 해방 후 대지주였던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몰려 서울 신설동으로 이사를 해 동신국민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때 6ㆍ25사변이 터져 경기도 가평으로 피난을 갔다. 1ㆍ4 후퇴 때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피난민 수용소의 수정국민학교에 다녔다. 이후 공무원 부친의 잦은 전근으로 광주 중앙국민학교를 거쳐 여수 동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무려 6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우등상을 받고 축구 선수로도 활약을 했던 모범생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