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걱정 없는 음악 소스들

(액션툴즈) 2007/10/22 16:18 미국의 냅스터 소송으로부터 국내의 소리바다 관련 사건까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의 상당 부분은 음악과 관련된 것입니다. 뉴스와 동영상, 사진도 저작권 이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음악과 관련된 저작원 이슈를 따라올 순 없죠. 저작권이라는게 참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정보의 공유와 창의력, 창작자의 권리 등이 항상 충돌합니다. LP, 테이프, CD, MP3 등 음악을 담아서 유통시키는 기술들이 진보해온 만큼 창작자들과 제작가, 유통업자들도 그 기술적 진보에 맞춰왔습니다. 문제는 LP나 테이프, CD까지 이어온 아날로그적 기술과 MP3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술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고, 저작권자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무한 복제의 상황이 온 것이죠. 그래서 음원을 공유하는 네티즌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됩니다만 그래도 음원은 계속 유통됩니다. 아마도 현재는 불법으로 되어 있는 이런 행위들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되지는 않겠죠. MP3가 없을 당시에도 사람들은 레코드 가게에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 제목을 적어서 불법 테이프를 만들어서 들어왔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포기되지 않을겁니다. 저는 이 흐름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흐름에 맞춰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이 기업 입장으로서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맨날 불법 복제 때문에 망한다고 엄살 피우기 전에. 이미 음악 제작자들과 유통업자들은 MP3 유료다운로드로, 벨소리로, 노래방으로.... 다양한 곳에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동영상 UCC에 쓸 수 있는 무료 음악 소스들 동영상 UCC가 대세인데 사실 동영상이 음악이 깔리지 않으면 밋밋한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사진이나 텍스트, 동영상은 이용자들이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한데 음악은 참 쉽지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동영상 UCC에 들어가는 음악들은 사실상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불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동영상 ...

클래식 감상을 위한 기초지식

감상(Appreciation)이란 음악을 이해하고 미적인 내용을 즐기면서 이해하는 체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감상하는 사람은 내면적인 활동으로 음악의 미를 느끼고, 감동하고, 즐겨하며, 음악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은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Composition)과 작곡된 악보를 소리로 연주(Performance), 그리고 음악을 듣고 느끼게 되는 감상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감상 역시 창작이라 생각할 수 있으므로 감상은 각자의 심미관(審美觀)을 통하여 작품 속에 담긴 참다운 가치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에 있어서 개인적인 연상은 오히려 감상을 해치게 되고요, 해설에 관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자기의 생각에 전적으로 포함시키는 일도 위험스러워요. 그러니까 감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 작품의 미를 발견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작품은 보통 성악과 기악으로 나뉘거든요. 초보자들은 기악곡이 좀 어려우실 겁니다. 하지만 음악을 계속 반복하여 많이 들으시면 여러분들의 귀가 많이 좋아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알아두시면 좋고요. 가능하다면 예술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교양을 쌓고 계속해서 음악을 감상한다면 음악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음은 감상을 위한 기초 지식에 관한 것입니다. 1.악곡의 구성 요소 (1)동기(Motive) : 악곡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요소로서 보통 2마디로 구성된다. 모든 악곡은 동기를 바탕으로 반복, 변주, 확대, 축소 등에 의하여 발전한다. (2)작은악절(Phrase) : 두 개의 동기가 모여서 생기는 것으로 대개 4마디로 이루어진다. (3)큰악절(Period) : 2개의 작은악절이 모여서 생기는 것으로 대개 8마디로 이루어진다.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악곡이 될 수 있는 독립성을 가진다. 큰악절은 결국 동기가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리듬 또는 멜로디, 화성 등이 뚜렷이 대조를 이루는 두 개의 부분으로 ...

텔미 - 원더걸스

Tell me 너도 날 좋아할 줄은 몰랐어 어쩌면 좋아 너무나 좋아 꿈만 같아서 나 내 자신을 자꾸 꼬집어봐 너무나 좋아 니가 날 혹시 안 좋아할까봐 혼자 얼마나 애태운지 몰라 그런데 니가 날 사랑한다니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봐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나를 사랑한다고 날 기다려왔다고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내가 필요하다 말해 말해줘요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자꾸만 듣고 싶어 계속 내게 말해줘요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꿈이 아니라고 말해 말해줘요 어쩜 내 가슴이 이렇게 뛰니 가슴이 정말 터질 것 같아 니가 날 볼 때면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전기가 올라 얼마나 오래 기다린지 몰라 얼마나 오래 꿈 꿨는지 몰라 그런데 니가 날 사랑한다니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봐 Bridge tell me, tell me, tell me you want me, want me, wante too Tell me, tell me, tell me you love me too, love me too 얼마나 오래 기다린지 몰라 얼마나 오래 꿈꿨는지 몰라 그런데 네가 날 사랑한다니 어머나 다시 한 번 말해봐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나를 사랑한다고 날 기다려왔다고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내가 필요하다 말해 말해줘요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자꾸만 듣고 싶어 계속 내게 말해줘요 tell me, tell me, tell tell tell tell tell tell me 꿈이 아니라고 말...

[추억의 LP 여행] 유재하

요절한 '가요계의 모차르트' / 클래식을 대중음악에 접목 17년 전인 1987년 11월 1일.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젊은 신인 뮤지션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가요계의 모차르트’ 로 불리는 요절 가수 유재하다. 사실 한양대 음대 작곡과 출신의 순수 음악도가 대중 가수로 변신한 것도 특별했다. 그는 사망 3개월 전에 데뷔 음반 ‘ 사랑하기 때문에’ 한 장을 세상에 남겼다. 그는 단 한 장의 음반만으로 “ 대중 음악의 수준을 몇 단계 높였다”는 사후 평가를 이끌어 낸 가수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의 아쉬움이 더해가는 싱어 송 라이터 유재하. 그래서 그를 기리는 가요제를 통해 수많은 재능 있는 후배 가수들이 15년이 넘도록 배출되고 있다. 그는 사업가였던 부친 류일청씨와 모친 황영씨 사이에서 3남 3녀중 다섯째로 1962년 6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정 많고 유순한 성품이었던 그는 효자로 알려져 있다. 69년 서울 은석 국민학교를 입학해 75년 삼선중, 78년 대일고를 졸업하고 81년 한양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하는 순탄한 성장기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재능이 탁월했던 그는 순수 음악을 전공했지만 대중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작곡 뿐 작사, 편곡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던 연주가였을 만큼 다재 다능한 만능 뮤지션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84년, 그는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 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웠다. ‘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조용필은 그의 대표 곡인 ‘ 사랑하기 때문에’를 먼저 취입했다. 86년에는 김현식이 주도한 록 그룹 ‘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창립에 참여해 잠시 활동을 했다. 대단한 술꾼이었던 그는 김현식과 술 친구로 지내며 음악적 교감을 나누었다. 김현식에게는 ‘ 가리워진 길’, ‘ 그대 내 품에’ 등 2곡을 주었다. 하지만 조용필, 김현식 모두와는 추구했던 음악적 지향점이 ...

[추억의 LP여행] <영 사운드> 안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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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사업에 남다른 수완 불멸의 히트곡 1972년 구성지고 경쾌한 노래들로 젊은 영혼들을 사로 잡았던 6인조 록 그룹 영 사운드가 등장했다. 대표곡인 ‘등불’과 ‘달무리’는 30여 년의 세월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한국 록의 불멸의 히트 넘버로 자리잡고 있다. 외국곡 연주가 주류를 이뤘던 당시, 영 사운드는 록 발라드 계열의 창작곡을 위주로 활동을 했던 중요 그룹이다. 리더는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조용필, 윤수일, 최헌, 주현미, 문희옥, 박남정 등 한국대중가요사에 걸출했던 스타들을 키워낸 음반제작자 겸 작곡가인 안치행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전남 진도 옆의 작은 섬인 가사도에서 소장을 했던 부친 안보만 씨와 모친 장말진 씨의 3남 1녀 중 3남으로 1942년 1월 30일 태어났다. 6살 때 목포로 나와 가사도의 기억은 없다. 이후 초등학교 3학년 때 익산으로 이사를 해 이리국민학교를 다녔다. 그 해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공부에 취미를 잃었던 그는 30살이 넘는 학생들이 즐비했던 이리 남성야간중학에 1회로 들어 갔다. 정학 중이던 이리농고 2학년 때 황해악극단이 단원실습생을 모집을 하자 집에서 운영했던 제과점에서 돈을 훔쳐 악극단을 따라 가출을 했다. 여수, 부산을 돌아다니다 돈만 뺏기고 집으로 돌아 왔다.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이 딱지놀이를 하며 기타통에 딱지를 넣는 것을 보고 기타를 빵과 바꿨다. 지나가는 사람이 연주해 준 ‘타향살이’에 마음을 빼앗기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때부터 기타책을 구해 독학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또 이리 원광대 관현악단에서 클라리넷을 불던 친구에게 악보 보는 법을 배웠다. 이후 7개월 간 기타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잘 정도로 연습을 하자 “기타를 잘 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방 하나를 얻어 악기점에서 기타를 빌려다 기타학원을 차렸다. 책가방을 들고다닌 적이 없던 문제아였던 그는 5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돼지를 몰고 제과점 앞을 지나가는 담임선생님과 “대학을 안 갈거니 오전수업만 하기”로 합의했던...

[추억의 LP 여행]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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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두 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슈퍼 스타 조용필은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가수다. 록, 트로트, 포크, 발라드, 댄스, 퓨전, 동요, 민요 등 35년 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은 거인이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는 '20세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의 넉넉한 농가에서 부친 조경구씨와 모친 김남숙씨의 3남 4녀 중 여섯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둥글둥글 성격이 좋아 '풀빵'으로 불렸다. 송산초등학교에 다니던 10살 때 뒤늦게 찾아온 홍역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을 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외국 팝송이 좋았던 그는 연주 그룹 벤쳐스와 비틀스 음악에 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2 때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해 경동중학에 들어갔다. 훗날 국민 배우가 된 안성기는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경동고에 진학하면서 공부보다는 더욱 음악에 빠져 었다. 3학년 때는 서소문의 대한일보 1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대타로 무대에 설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출을 했다. 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길 바랬던 부모님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 3명과 동대문 근처에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월세 방을 얻어 그룹 '애트킨스'를 결성했다. 석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문산의 용주골로 갔다. 이 시절의 1년은 흑인 병사와 양공주들이 던져주는 팁으로 생활하는 가혹한 시절이었다. 팀 해체 후 1969년 와해 직전의 화양 소속 그룹 '화이브 휭거스'에 리드 기타로 들어가 파주군 장파리의 DMZ클럽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주 레퍼토리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히트곡들. 하숙방과 업소에서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들은 노래의 선율을 도화지에다 건반을 그려가며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

[추억의 LP여행]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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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가수 김정호가 그렸던 고독한 인생의 이미지는 짙은 회색빛이었다. 비범한 재주는 신조차 질투가 솟았을까! 너무도 젊은 나이에 앗겨버린 그의 노래세상은 온통 그리움, 고독, 슬픔, 이별 등으로 뒤범벅된 삶의 반영이었다. 숨쉬기조차 힘들게 폐부 깊숙한 곳에서 요동쳤던 결핵균들은 오히려 숨이 끊어질 듯 가슴속의 한을 토해내게 했다. 대중들은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어느 누구도 마음 깊은 곳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촉촉히 적셔대는 처연한 멜로디와 노랫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감수성 예민한 소녀팬들을 얼어붙게한 '이름모를 소녀' '하얀나비' 그리고 젊은층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랑의 진실' '작은 새' 등은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곡들. 드라마틱하게 짧은 삶을 살다간 김정호의 등장은 가요계의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오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노래는 젊은 학생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던 기존의 포크음악을 온 국민을 대상으로 영역을 넓히며 공감대를 형성할만큼 호소력이 강했다. 새마을운동으로 건설열기가 드높은 당시 사회에 '너무 어두운 곡'이라는 이유로 일부 배척도 있었지만 창백한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처절하리만치 슬픈 멜로디는 온나라를 중독시키며 진동했다. 원로작곡가 황문평 조차 '감히 천재로 표현해도 좋다'며 34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김정호의 음악을 안타까워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17년이 지났다. 자신의 음악이 세상에 울려퍼지는 달콤한 꿈을 꾸며 음악공부에 하얀밤을 지세우며 몰두했던 김정호. 혼을 담아 기타줄을 튕겨대며 젊음을 불사르던 모습에 음악선배들도 머리를 숙였다. 본명이 조영호인 김정호는 1952년 3월 전남 광주에서 부친 조재영과 모친 박숙자의 2남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여수경찰서장을 지내고 출판사를 경영했으며 모친은 동일창극단원으로 명창 김소희와 함께 활동했던 창의 명인으로 유명했다. 광주 수창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 교동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김정호는 ...